역사 속의 지리산(20)동편제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11-07-29 13:08 | 1,840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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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의 지리산(20)동편제
섬진강 동쪽 남원·순창서 전승된 소리 … '호방' '남성적' 옥보고 등 역사 속 인물 지리산서 '소리 힘'


"서편제가 애절하고 정한이 많다면 동편제는 무겁고 맺음새가 분명한 소리지. 하지만 한을 넘어서게 되면 동편제도 없고 서편제도 없고 득음의 경지만 있을 뿐이야."

   
 
   
 
영화 <서편제>의 대사다. 서편제에 비해 동편제는 낯설다. 하지만 동편제는 춘향가·흥보가 등 우리 판소리계의 한 맥을 잇고 있는 원류다.

섬진강을 경계로 동쪽 부분에서 전승된 소리를 동편제라 한다. 섬진강 동쪽 부분은 남원, 순창, 구례, 곡성, 고창 등 지리산의 정기를 받고 있는 지역이다.

영화 <서편제>에서 나오는 판소리를 들어보면 기교가 많고 구슬프다. 하지만 동편제 소리는 호방하고 남성적이다. 대장단을 위주로 장단을 짜며 감정을 절제하는 창법으로 쭉쭉 뻗는 소리인 '목으로 우겨내는 소리'를 구사한다. 소리에 특별한 기교를 부리지도 않는다. 잔 가락을 적게 붙이고 매 구절의 끝마침을 명확히 한다. 지리산의 힘찬 기상을 닮은 듯하다.

동편제의 역사적 인물들은 지리산에서 '소리의 힘'을 얻었다.

통일신라시대 악성 옥보고는 지리산 운상원(운봉)에서 거문고를 완성, 전수하며 말년을 보냈다. 동편제 판소리의 창시자인 송흥록(1780∼?)도 지리산에서 묵었다.

송흥록 선생은 민속음악 가운데 가장 느린 진양조를 판소리에 응용해 판소리의 표현영역을 확대시켰다. 특히 <춘향가> 중에서 춘향이 모진 매를 맞고 옥에 갇혀 있을 때 원통하게 죽은 귀신들이 나오는 옥중가는 그가 창작한 독창적인 판소리 창법이다.

옥중가는 '옥중가의 귀곡성'으로 유명한데 진주의 촉석루에서 소리를 할 때 귀곡성을 내자 갑자기 바람이 일고 촛불이 꺼지면서 하늘로부터 귀신이 우는 소리가 들려왔다고 한다. 또한 선생이 죽고 난 후 무덤에서는 '내 소리를 받아가라'는 귀곡성이 그치지 않았다는 이야기도 전해질 정도로 그의 목소리에는 혼이 담겼다고 알려져 있다.

송흥록 선생이 태어나고 전수한 곳은 남원. 국내 유일의 국립민속국악원을 비롯해 기왕 송흥록 선생 생가의 판소리 탯자리와 동편제 거리가 남원에 있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남원은 송흥록의 손자 송만갑은 물론 김정문, 강동근과 여류 명창인 이화중선, 박초월, 안숙선, 강정숙 등이 태어나 소리를 익힌 곳이기도 하다.

지난 6월에는 하동 악양면에서 동편제 수궁가의 거장인 유성준(1873∼1944) 명창의 묘역이 발견되기도 했다. 유 명창은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전반기에 걸쳐 송만갑 등과 함께 당대 최고의 명창으로 불린 인물이다. 송흥록의 조카 송우룡 명창을 사사하고 <적벽가> <수궁가>를 강도근 등 명창들에게 전승하기도 했다. 유성준 명창은 고향인 전남 구례를 떠나 하동 악양면 상신대 마을 인근에서 말년을 보냈고 1944년 쓸쓸히 생을 마감했다. 지난 6월 발견 당시 후손이 없어 묘역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상태였다고 전한다.

지금도 지리산 어디쯤에 동편제의 기운이 묻혀 있진 않을까.

경남도민일보 박종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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